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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 라는 질문이 멈췄을 때,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프랭클 × 니체 편)

by 내려놓는게 인생? 2025. 4. 13.

 

“그는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빅터 프랭클은 평범한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1942년,

그의 가족과 함께 나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며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죽음과 나란히 걷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발은 얼어붙었고, 양말은 없었으며, 옷은 종잇장 같았습니다.
눈 속에서 몇 시간을 일하고, 쓰러지면 몽둥이가 날아들었습니다.


이름도 없고, 존엄도 없고, 내일도 없던 시간.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자리 친구가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방심한 순간, 고문을 당해 다시는 말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지?”
모든 걸 잃은 프랭클에게 남은 건 그 질문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니체를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과 삶을 이야기했지만,
‘괴로움’에 대해 가장 날것으로 마주한 철학자,

니체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니체는 평생 병약했고, 시력을 잃어갔으며,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갇혀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 니체는 말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
프랭클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로 합니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살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1. 고통을 이기는 니체의 철학, 아주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니체는 고통을 “도망쳐야 할 불행”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만드는 시간"이라고 봤습니다.

 

쉽게 말해, 그는 이런 말을 한 셈입니다.

"지금 네가 겪는 그 아픔은,
네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거야.

그걸 버리지 마. 그걸 껴안아. 그게 너야."

그는 그걸 ‘운명애(Amor Fati)’,

즉 ‘운명을 사랑하라’고 표현했습니다.

 


 

2. 괴로움을 껴안는다는 건, 프랭클에게 이런 일이었습니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매일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물에 가까운 수프, 썩은 감자, 때때로 한 조각의 빵.
그마저도 빼앗길까봐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고, 배신했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라는 이유로 실험실에 끌려가 죽을 뻔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친구가 자신 몰래 그의 빵을 훔쳐간 걸 알고도
그를 이해하며 용서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사람다운 선택’을 할 자유는 남아 있다.”


그가 택한 태도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 고통을

나만의 방식으로 견뎌보자.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자.

 




3.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를 절망이 아닌 사명처럼 다시 물어본다는 것

 

강제수용소에서의 하루는

끝없는 노동, 굶주림, 죽음,

그리고

모욕이 반복되는 시간입니다.


프랭클도 처음엔 무너졌어요.

아내와 부모는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공포.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이런 끔찍한 곳에서
내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때 문득,

병원에서 고통받던 환자들과 환자들의 눈빛이 떠올랐다고 해요.
자신은 의사였고,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었죠.


프랭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이 지옥을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건 단순한 ‘희망’이 아니었어요.


그 고통을 견딜 이유를 만드는

‘내면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눈 속을 걷고,

고함을 듣고,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속으로

계속해서 책의 문장을 정리하고,

강의 내용을 머릿속에 써 내려갔습니다.


그건 그의 마지막 자유였고,

정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4.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니체가 남긴 말,

그리고 프랭클은 그 말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지옥 같은 매일 속에서,

프랭클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그 질문은
점점 절망이 아닌 
사명처럼 바뀌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누군가는 지금도 이유 없이 괴로움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책을 썼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지금까지 수천만 명의 삶을 바꾸었다.

 

프랭클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고통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껴안아야 할 것이다.

 

고통을 껴안는다는 건

무조건 견디는 것이 아니다.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끝까지 자기를 놓지 않는 것이다.

 

괴로움을 사명으로 바꾼 그 한 사람이,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5. 왜 그는 글을 남기려 했을까?

 

그는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미 정신치료 이론 ‘로고테라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은 의미를 찾아야 산다.”

그 의미를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 스스로 실험하게 된 것이죠.


만약

이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글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지옥 속에서도 삶은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를 바랐던 거예요.

 


 

6.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아마도 이 말은 단순한 영웅심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자신 바깥에 있다는 직감에서 온 것일 거예요.

 

프랭클은

사랑하는 아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이 고통을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는 이야기로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는 믿음은,
매일 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되뇌었던

니체의 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괴로움을 견딘 프랭클의 3단계 마음 여정


 

단계 상태 내면의 질문 변화된 태도
1단계 절망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무기력, 고통의 수동적 대상
2단계 성찰 “이 고통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질문의 방향이 바뀜
3단계 사명 “이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을 받아들이고 의미 부여

 


 

7. 나는 오늘, 프랭클처럼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에게도 고통이 있다.

 

누구도 모르게 삼켜야 했던 눈물,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이유 없이 날 괴롭히는 외로움.

하지만 오늘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가 아니라—

🔥 "이 고통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운명 속에서

살아남을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러니

더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더는 나를 피해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나는 괴로움을 껴안고, 삶을 껴안겠습니다.

 

이 지독한 밤이 끝나면,

나는 나만의 새벽을 시작할 겁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